도서 소개
‘마지막(The End)’
영화 상영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의 스크린은 ‘The End’라는 자막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꺼져 있던 영화관의 조명이 하나둘 다시 켜지면 영화 관람을 마친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를 향하면서 상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영화 평가가 시작된다. 만약 내려진 스크린 너머로 그 영화의 감독이 있었다면, 다양한 영화 평을 들은 영화감독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영화는 끝이 났지만 영화감독은 수많은 생각에 잠길 것이다. 혹여 영화감독의 가슴을 후벼파는 거친 비난을 들었다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최소한 다음 작품에는 관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항상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으로.
학교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해 본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40여 분에 해당하는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같이 동시간대에 만들어 나가는 한 편의 연극으로, 영화와 달리 편집할 수 없다. 영화는 편집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화면을 더욱 화려하게 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은 필름을 잘라서 편집해 버릴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작 후 자막을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다면 사전에 필요한 것을 무대에 모두 설치해 두어야 한다. 불필요한 장면은 사전에 없애야 한다. 관객들의 다양성도 염두에 두고 자막이나 수화가 지원되어야 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제공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마도 이번 연극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해 나가야 한다. 그야말로 모든 학생을 위해 충분한 자료를 갖추는 것, 학생들의 배경지식을 고려하여 수업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 학습동기를 유발하고 유지하는 것,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을 배양하는 것,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 등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다소 이상적으로 교사의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수업이 되기도 한다.
연극과 비교할 때 영화는 보편적 학습설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보기라고 할 수 있다. 연극 역시 정해진 시간 동안의 연기를 위해 모든 것들이 사전에 계획된다. 연기자를 포함한 연극 관계자들 모두 관객들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한다. 예를 들어 무대를 꾸미고 소품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무대로부터 먼 곳에 위치한 좌석에 있을 관객을 위해서는 음향 장치도 확인한다. 그러나 아마도 여기까지가 마지막인 듯하다.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무대로부터 가장 먼 좌석에 앉아야 하는 관객, 우리말이 서툰 외국인 등은 공연장 입장은 가능하지만 공연에 몰입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떠한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잘 만들어진 영화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위해 그리고 영화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전개를 위해 불필요한 요소는 삭제된다. 그리고 극적 효과를 위해 첨단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다양한 관객들의 만족도를 위해 시각적, 청각적 자극 제공은 물론 극장 규모에 맞춰 스크린 크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일종의 고객 맞춤이 가능하다. 따라서 관객들은 영화관에 들어오는 것에 만족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영화의 작품성, 연기자의 연기는 물론 영화의 화질, 음향 등에 대해서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수업은 이제 단순한 연극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업은 학생이라는 관객 앞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취지에서 연극에 비유되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수업은 연극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배경지식의 다양성, 지식습득 속도의 차이, 충분한 자료, 배경지식을 고려한 수업의 난이도, 학습동기유발 및 유지, 자율적 실행기능의 향상, 적극적인 참여 등과 같은 요소들을 사전에 고려함으로써 학생들을 관객이 아닌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의 수업은 영화같은 연극이 되어야 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번 수업시간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사전에 거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여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편적 학습설계이다.
이 책에서 주제로 다루고 있는 보편적 학습설계는 사전에 학습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하고 이를 수업에 반영함으로써 학습자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접근방법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가 반영된 교육과정 자체 즉, 보편적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근간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공통 교육과정 자체를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에 따라 만들자는 것이다. 학습부진아, 저성취학생이라고 불리는 학생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이와 같은 학생들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교육과정이 문제이며, 학생들의 특성이 반영된 교육과정이 만들어진다면 학습부진아 혹은 저성취학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교육과정에 맞춰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 맞춰 교육과정을 평가하는 것으로 평가의 기준이 바뀌는 것이다. 이만큼 보편적 학습설계 그리고 보편적 교육과정은 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보편적 학습설계가 추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독자들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보편적 학습설계와 관련된 요소들을 전달하는 데 우선적인 목적이 있다. 책은 전체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1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토대가 되었던 보편적 설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제2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었다. 앞의 두 장은 일종의 개론에 해당한다. 제3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와 많이 혼동하고 있는 용어들을 중심으로내용을 구성하였으며 제4장에서는 보편적 학습설계 가이드라인의 변화 과정, 지침, 체크포인트 등을 상세하게 살펴보았다. 제5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이론적 배경인 뇌과학, 테크놀로지,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제6장과 제7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에 대한 오해 혹은 편견을 유발하는 차별화교수 그리고 멀티미디어에 관해 다루었다. 제8장과 제9장은 보편적 학습설계의 실행과 관련된 부분으로 제8장은 기존의 이론을, 제9장은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에 맞춰 새롭게 개발된 ‘한국형 보편적 학습설계 기반 수업설계 모형(K-PAL)’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보편적 학습설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반드시 제1장부터 읽을 것을 권장한다. 대략적으로 접해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제6장부터 읽기 시작해도 주제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특히 저자가 머리말에서 반드시 밝히고 양해를 구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이 책은 가독성을 중요시한 이유에서 참고문헌 인용 방법에 있어서 전형적인 방법을 탈피하였다. 즉 본문에 참고문헌 인용이 많으면 가독성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만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참고문헌에 포함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해당 문장의 출처 등을 명확히 알고 싶다면 각주 등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논문을 참고하면 된다.
머리말을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였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더 이상의 어떤 것도, 어떤 행동도 무의미한 자포자기의 심정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듯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담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인생에 있어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함께 하는 것 같다. 출산은 일체(一體)였던 모체로부터의 마지막이었고 퇴근은 일상이었던 오늘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의미한다. 혹자의 표현대로 새로운 내일이 시작된다고 하지만 어제하고는 같을 수 없는 오늘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마지막을 살고 있는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변화하는 사회체제에 따라 교육체제가 변하기도 하지만 보다 건강한 교육이라면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때 교육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오늘이 그리고 이번 수업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수업을 준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교사의 수고 덕분에 우리 학생들은 바뀌지 않을 것 같음에도 바뀌게 될 것이고 체제 역시 느리지만 바뀔 것이다. 어쩌면 보편적 학습설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이면에 담고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에 담겨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순수하게 저자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보편적 설계, 보편적 학습설계도 그렇고 이들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이에 알지 못하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들의 실력과 노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저자의 산물을 책으로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양서원 관계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약한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우리 가족(강희진, 김지윤, 김채은)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9년 시월의 마지막 날에
김남진
목차
Chapter 1. 보편적 설계의 이해
1. 보편적 설계의 개념
2. 보편적 설계의 원리
Chapter 2. 보편적 학습설계의 기초
1. 보편적 학습설계의 개념
2.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Chapter 3. 보편적 (학습)설계의 확장
1. 보편적 교육설계
2. 보편적 수업설계
3. 보편적 교육과정
Chapter 4. 보편적 학습설계 가이드라인
1. 보편적 학습설계 가이드라인에 대한 이해
2. 각 원리별 구성
Chapter 5. 보편적 학습설계의 이론적 배경
1. 테크놀로지의 발달
2. 다중지능이론
3. 뇌과학
Chapter 6. 보편적 학습설계와 차별화 교수
1. 차별화 교수에 대한 이해
2. 차별화 교수전략
3. UDL과 차별화 교수
Chapter 7. 보편적 학습설계와 멀티미디어
1. 테크놀로지와 멀티미디어
2. 멀티미디어와 보편적 학습설계의 원리
3. 멀티미디어와 접근성
Chapter 8. 보편적 학습설계의 실행과 효과
1. 보편적 학습설계의 적용
2. 보편적 학습설계 기반 수업의 효과
Chapter 9. 한국형 보편적 학습설계 기반 수업설계 모형
1. 목표 확인
2. 분석
3. 목표 설정
4. UDL 적용
5. UDL 수업지도
6. 반성적 사고
부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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